지금,나는.

왜 사는가, 왜 그리는가? _ 이성표 인터뷰



 

  

 

왜 사는가,
왜 그리는가?

 

 

최찬휘(힐스 20기, 이하 최) : 직업인으로서 성공하길 바라면서 힐스에 오는 사람들이 있나요? 그런 경향이 있는지.

이성표(이하 이) : 직업인으로서 성공을 바라는 건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육의 목표는 단지 직업인으로의 성공이 아닙니다. 세상이 원하는 수준의, 적절한 기능을 가진 사람을 길러내는 정도의 교육이 힐스의 목표는 아닙니다.

김하솔(힐스 20기, 이하 김) : 힐스에서 저희가 서로 얘기를 할 때, 설명회 때도 그렇고, ‘동인’이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힐스에서 그것을 어떤 의미로 봐야 하는 걸까요?

이 : ‘동인’은 권혁수 선생님이 시작하신 호칭인데, 내 생각엔 동지로서 이 장르를 함께 하며 살아가자는 뜻에서 동인이라고 부르는 거 같아요. 같은 학교에 다닌 동창 정도가 아니라, 작가로서 뜻을 같이 하며 함께 생을 걸어간다는 뜻 아닐까 생각해요. 오래오래 멀리까지 함께 가는,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인 것이지요. 권 선생님은 손해를 보더라도 동인들을 위해서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죠. 그런 아이디어들이 실현되려면 돈이 많아야 하는데, 학교가 돈이 없어요.(웃음) 권샘 생각은 백만 불짜리인데, 학교는 만 불 정도 있으니까, 그 점은 우리의 오래된 좌절이 아닐까 싶네요.

최 : 그럼 동인 혹은 작가 공동체를 통해 힐스가 나가고자 하는 구체적인 방향은 무엇인가요?

이 : 일러스트레이션 활동의 상업적 기반에 대해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유익을 창출하기도 하고 사회적 현실에 기여하기도 하는, 그런 일러스트레이션 공동체, 그게 권 선생님의 꿈이었지요. 힐스라는 학교는 그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씨앗 같은 것이지요. 일단 작가들이 쌓이면, 선생들이 늙어 활동을 접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살아 있습니다. 스스로 작가로서의 연대가 가능한, 그런 작가들이 세상에 뿌려지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 아닐까 합니다.

최 : 그런 얘기들, 꿈이라고도 혹은 비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선생님들께서 대학 다니시면서 같이 나눴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 대학 땐 못 만났어. 서로 몰랐어요.

최 : 그럼 대학원 가시고 나서 알게 되신 거예요?

이 : 그래요. 난 대학원을 갔고 권혁수 선생님은 장교로 군대를 갔는데, 권 선생님 친구였던 한재준 교수가 권 선생님을 소개시켜 줬지요. 첫 만남에서 노래를 바로 지어주더라고요.(웃음)

최 : 권 선생님께서 제가 학교(힐스)에 들어오고 두 번째 만남에서, 기타를 치시며 노래를 불러주셨는데, 그게 조동진의, [제비꽃]이랑 [작은 배]였어요.

김 : 권 선생님께서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는 분이시라고 느껴지는 게, 혼자서 노래 부르시지는 않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노래를 부르시면 혼자 부르는 게 아니라, ‘들려줄게’ 이런 느낌이랄까.(웃음) 함께 있을 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최 : 권 선생님은 초창기에 학교를 세우고 ‘일러스트레이션은 무엇이어야 하나’에 대한 물음을 공유하려고 하셨던 듯해요. 그런데 왜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정의를 자주 생각해야 하는 걸까요? 게다가 ‘일러스트레이션, 무엇인가’ 라고 하지 않고 ‘무엇이어야 하나’라고 정의하려고 할 땐 당위적인 절실함이 느껴지거든요. 이 정의를 바로 알고 가야만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한 어떤 지향이라든가, 가치관 같은 것들을 그 정의에 맞게 운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다가오는데요. 그러나 한편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의 정의를 강하게 규정하면, 그 정의 안에 일러스트레이션이 묶여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도 듭니다.

이 : 권 선생님은 목적하는 지향점을 향해 정의를 데리고 가는 경향이 있지요.(웃음) 깃발을 올린다고 할까. 나는 체질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종종 권 선생님의 정의 쪽으로 되돌아가곤 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개념’이라는 것은 변해가기 마련이지요. 사전적 정의도 바뀌어요. 작가들은 끊임없이 장르의 외연을 넓혀가는 작업을 합니다. 소위 ‘실험적’ 작업을 하지요. 나도 우리 장르의 지형을 확산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리를 넓혀가다 보면 반드시 놓치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고, 어느 물결에 가면 왜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며 허우적거리는 순간들이 생겨요. 그럴 때마다 권혁수 선생님의 정의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곳에 권 선생님이 딱 지키고 있어요. 적어도 몇 마디를 지키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저의 훌륭한 스승입니다.

최 : 그렇게 정의나 개념 자체가 시대에 따라서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일러스트레이션을 이해하는 데 더 혼란을 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 : 문학에서는 흔히 이런 질문을 하지요. 소설이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어떤 작가는 ‘내 소설의 목표는 소설이 무엇인지를 묻기 위한 것이다’고 내세우기도 합니다. 즉 본질적 반성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일러스트레이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의 본질에 대해서 계속 묻지 않으면, 즉 반성하고 있지 않으면, 이 장르는 죽게 될 것입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렇게 하는 것이 맞나?’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러스트레이션은 무엇이어야 하나’라는 말은 궁극적으로 ‘당신은 왜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연결됩니다. ‘왜’를 묻지 않으면 죽어가는 장르지요. 우리가 자신에게 왜 사는지를 묻지 않게 되는 순간 기성이 되고, 그저 늙어가는 인간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최 : 그런 선생님의 마음가짐이라고 해야 될까, 그게 선생님 작업이랑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작업만 잘해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되고, 왜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들이 작업에 반영되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이 : 일치하게 되면 좋겠지만 기실 그렇지 못하지요.(웃음) 왜 그리는가에 대한 답은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그 ‘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 하는 질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러스트레이션 왜 하세요?’라는 물음에 ‘나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합시다. 작업장에 돌아와서 마주치게 되는 것은, ‘자 그럼 이제 뭘 그려야하지?’라는 현실적 명제입니다.

김 : 그 ‘무엇’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삶과 연관이 되어 있잖아요. 그 과정에서 헷갈리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가장 기본적인 모습은, 내가 지금 힘드니까 힘든 느낌의 작업물이 나온다던지 하는. 특히 학생 때 많이 그러는 것 같아요.
작업과 삶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 : 젊을 때는 사실 그 균형을 맞출 수가 없어요.(웃음) 일단 그림 실력도 부족하고, 세상을 아는 것도 부분적으로 알고 있고, 책도 300권 읽어야 된다면 30권 읽은 상태고. 사회나 삶에 대한 인식이 초보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무엇을 그리겠다고 결론 내리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왔다 갔다 하는 거지요. 어떤 면에서는 다양한 사고를 경험하는 것, 혹은 사고를 다양하게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림 기술도 꾸준히 훈련해야지요. 마음에 생각한 게 종이 위에 그려져야 하니까. 적어도 근사치로는 그려야 되잖아요.

최 : 삶에 대해 본인이 느끼고 생각했던 바를 표현한다고 했을 때, 표현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잖아요.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글을 쓸 수도 있고. 그런데 선생님에게는 그게 ‘그린다’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는 건데, 그림을 좋아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있으셨던 건지, 혹은 다른 요인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 :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부터 종이만 있으면 계속 그려대니까 집안 어른들이 싫어했지요. 단지 그리는 게 좋아서 미술을 선택했던 건데, 대학에 가서 일러스트레이션을 배우게 되면서 어떤 그리기를 해야 할지 깨닫게 되었지요. 일러스트레이션이란 대중적 소통을 도모했던 그림입니다. 시민사회 성립 이후 시민계층을 독자로 하는 신문이 나오면서 지금의 일러스트레이션 비슷한 것이 생겼거든요. 즉 대중을 상대로 다량의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일러스트레이션이 나온 것입니다. 우리의 대학시절은 군사정권 말기여서,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감춰져 있는 말이나 쳐 박혀 있는 문장들을 꺼내서 그림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만큼 매력도 있었지요. 빛을 비추어 드러내기. 그것이 일러스트레이션의 중요한 본령 중 하나 아니던가요? 나는 별로 총명한 편이 못 되어서 정치적인 문제 자체를 그리기 보다는 정치적인 문제들로 해서 억압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나 눌린 형상, 이런 것들을 그리고 싶은 생각이 많았어요. 특히 내가 처음 본 일러스트레이션 자료들엔 유럽 출신 작가들의 그림들이 많았는데, 그림들이 아름답고, 절실하면서 또한 솔직했지요. 학교 스승께서는, 일러스트레이터는 미디어에 작업을 올려서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셨지요. 오늘 그린 그림이 다음날 곧바로 사람들과 만나니까 얼마나 매력 있던지!

최 : 작가의 뜻, 혹은 믿는 가치를 그림으로 말하는 것이 일러스트레이션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언어가 아니라 그림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능성과 한계가 같이 있을 듯한데. 내가 표현하고 싶은 바도 주장해야 하지만,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수준이나 이해도도 고려하면서 작업을 해야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이 :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은 대부분 텍스트와 함께 사용됩니다. 그러니까 텍스트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어야 하죠. 신인 시절 나는 ‘필자의 주장을 드러내되 내 상징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다행히 80년대 잡지의 아트디렉터들께서 그걸 괜찮게 평가해 주었어요. 전 세대 선배들의 그림은 삽화적 작업이 대부분이었는데, 나는 이를테면 개념적인 그림을 그렸던 셈이지요.

최 : 선생님이 보시기에, ‘나는 이렇게 하고 싶다’라고 하는, 나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던 걸까요? 선생님의 기질로 파악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다른 견해가 있었던 건지요.

이 : 사실 난 대학 다닐 때부터, 필자의 문장을 다시 그림으로 반복하는 거 하고 싶지 않았어요. 나는 필자하고 동등하고 싶었어요. 그림이 글보다 더 재미있었으면 했지요. 사람들이 그림부터 주목하고, 그림부터 먼저 읽고 싶도록 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어요.

최 : 그게 ‘문학과 일러스트레이션’스튜디오의 기본적인 기조일 수 있었겠네요.

이 : 깔려 있어요. 하하, 그런데 이번에 그렇게 잘 되진 않았지요.

최 : 문장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거나, 텍스트를 자기 식으로 해석해야 하는 과제들이 난이도가 굉장히 높지 않았을까…

이 : 어려워요. 게다가 우리 스튜디오 수업에서는, 먼저 정확한 해석을 요구했기 때문에 더 어려웠을 거예요. 텍스트를 얼마나 소화했는지, 그 다음 소화한 것을 얼마나 사람들이 납득할만하게 그렸는지 토론했지요. 근데 그쯤에서 진도를 멈추어야 했습니다. 이전 기수까지는 이런 정확성에 대한 실험을 (충분하진 않지만) 꽤 하고, 그 다음에 독자적인 자기 언어나 텍스트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8주 정도 더 줄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았어요.

최 : 삽화의 개념을 일러스트레이션이 안고 갈 것인지, 아니면 떼어내야 하는 것인지요?

이 : 삽화 정신은 일러스트레이션의 코어core 같은 것입니다. 삽화가 가진 겸손한 사실성, 여기 근거를 두지 않으면 나머지 변형들은 허공에 뜨는 이야기가 됩니다. 고증에 충실한, 사실에 바탕을 둔 삽화들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 일러스트레이션 같은 경우 여러 자유로운 표현들이 펄펄 나는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그 바닥엔 사실적 일러스트레이션이 큰 비중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최 : 저널리즘적인 측면이 있다고 봐도 될까요. 사실에 대한 보도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 : 지나간 사실을 말할 때도 그렇고, 현재를 다루는 저널에서도 마찬가지고, 사실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나는 사실적 묘사를 즐기지 않지만 사실성을 무시하고 작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일러스트레이션을 설명하는 사전적 정의 중에 제일 앞서 있는 게, 쉽게 이해하도록 그림으로 설명해준다는 것입니다. ‘쉽게 이해하도록’ 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그 지점이 일러스트레이션의 시작이거든요. 거기서 발전하여 풍자도 하고, 비유도 하는 거지요.

최 : 출판 조건이나 텍스트와의 관계 속에서 표현되는 것뿐만 아니라, 전위적으로 확 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일러스트레이션이 그런 코어를 가져야 된다는 말씀인가요?

이 : 그 전통을 간과할 수 없다고 봅니다. 학교에서 권 선생님이 아마 가르치셨겠지만, 일러스트레이션(illustration)이란 말이 ‘빛을 비춘다’는 뜻이거든요?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말이 생겨나기 바로 전 단계의 단어가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입니다. 일루미네이션은 ‘조명한다, 계몽한다’는 뜻이에요. 진리를 조명해서 (대중이)잘 알 수 있게 해준다는 뜻이죠.

최 : 이번 전시에서 보면, 예술적으로 깊게 들어간 수준 높은 그림들이 있습니다. 그런 그림들은 그럼 쉽게 이해시키고 계몽도 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의 삽화적 기능과 부딪히진 않는가요?

이 : 삽화적 기능을 너무 강조하면 북한 그림 같이 되고, 예술성을 강조하다보면 일러스트레이션의 본령을 떠나 멀리 예술 세계를 헤매는 그림이 되지요.

최 :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의 기본 뜻과 의미는 늘 염두에 두면서…

이 : 예, 그런 것을 염두에 두면서 예술적 성취를 도모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김 : 그렇게 작업의 성격을 선택하는 게 작가의 의지일 수도 있고, 자기 목소리를 찾아나가면서 우연히 발견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현장의 작가들에게도 유행하는 흐름이 있지 않나요?

이 : 언제나 있죠.

김 : 그런 걸 따라가면서 무언가 놓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 유행을 따라간다는 것은, 내가 약해져있다는 뜻이 됩니다. 유행을 따라간다는 건, 돈을 따라가는 거예요. 지금 유행하는 걸 그려야 돈이 되니까. 그런 점에서 유행을 좇는 경향에 유의해야 합니다.

김 : 권 선생님이 얘기하신 것과 같은 공공적인 측면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이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가 지금 이야기와 연관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학교 들어오기 전에 일러스트레이션을 생각하면, 광고를 비롯한 상업적인 그림들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과연 일러스트레이터들이 공공적인 차원에서 노력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요? 힐스에서도 어려운 문제 같더라고요.

이 : 일러스트레이터가 공공의 과제 혹은 공공의 서비스를 실행하는 경우가 참으로 적습니다.
그러니 일반인들의 일러스트레이터에 대한 인식도, 상업적이고 예쁜 그림 그리는 화가 정도에 머물러 있는 거죠.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질문을 한다거나 해석을 의뢰한다거나 하는 일이 없어요. 시인한테도 그런 걸 묻고, 화가한테도 가끔 그림을 청탁하지만, 일러스트레이터에게는 그런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이건 우리가 자초한 일입니다. 기업이 불러서 일을 시켜주기만 바라는, 소시민적 태도로 살아온 것이 전부니까요. 그런 사람들에게 중요한 이슈를 질문해서 과연 무슨 답을 얻을 수 있겠어요?

김 : 작업을 할 때 더 길게 보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이 : 맞아요. 그런데 길게 보려면 밥은 먹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건 뭐, 뗄래야 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길게 가야하겠다 생각했다면 그 기간 동안 내가 어떻게 밥을 먹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동시에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 서둘러서 급히 이루려 하기보단, 조금 천천히 말예요. 오늘 여러분 선배가 내게 그림책을 하나 보내왔는데(<빗방울이 후두둑> _ 전미화), 자기를 소개하는 난에 이렇게 쓰여 있어요. ‘가끔 먹고 사는 것이 힘에 부치면 잠시 멈추고 천천히 간다. 반드시 그것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위안으로 삼는다.’

김 : (일반적인 작가 소개글과 달리) 뭐가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으셔서 좋네요.(웃음)

이 : 전미화씨는 지혜가 있는 사람 같아요. 우리는 좀 차분하게 살아야 해요. 너무 빈궁하지 않도록 어디선가 돈을 만들면서. 그림으로도 일하고, 그림 아닌 일도 좀 하면서 삶을 잘 엮어야 합니다. 약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내 생각에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이 ‘왜 그리나’라는 질문보다 앞서야 한다고 봐요. ‘이렇게 살기 위해서 나는 그림을 그린다.’는 답이 가능해야 합니다. 나름의 생의 가치들을 정리해 놓을 필요가 있어요. 자기가 꿈꾸는 상태를 잘 적어 놓으면, 중간에 잠시 다른 데로 빠져나가도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원래 정해 놓았던 인생의 목표, 혹은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자기 비전 안으로 돌아오는 것이지요. 생이란 나갔다 다시 돌아오고, 또 나가고 하는 것입니다. 돌아오고, 돌아오고 하면서 점점 나의 비전과의 갭이 좁아지고, 나이 먹을수록 그 중심에 가까워져요. 흔들림이 줄어드는 것이지요.

최 :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정신적, 정서적 태도로서, 왜 사는지, 또 왜 그리려고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중요해 보이네요.

이 : 그게 사실 제일 중요해요. 그 질문에 답을 정해놓지 않으면 자꾸 헷갈리고, 심하면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직업적인 신념조차도 흔들리게 되거든요. 내 인생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이란 무엇인지도 규정해 놓아야 돼요. 이걸 안 해놓으면 다른 일에 빠질 때마다 휘청거리면서 우리 자신을 가누지 못할 수가 있어요.

최 : 자기 삶을 잘 가누는 태도에서 나오는 그림이,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좋은 그림이라는 말씀인가요?

이 : 좋은 그림을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좋은 인생을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 그림이 곧 인생이 아니에요. 그림은 인생만큼 크지 않아요. 그림은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는, 혹은 보람 있게 해주는 한 요소인 것이지 그림이 곧 인생은 아닙니다. 인생은 훨씬 다양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죠. 태어난 사람마다 각자가 향유해야 마땅한 인생이 있어요. 그걸 위해서 그림도 그리고, 애인도 만나고, 그걸 위해서 바닷가를 두 시간 이상 걸을 수도 있는 것 아니던가요?

최 :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그림을 그릴 재능도 있으시고, 또 그렇게 그려온 삶도 있으신데, 그런 것을 바탕으로 인생에 어떤 가치를 실현해보고 싶으신지.

이 : 지면에 나가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생각이 많지요. 항상 그 문제를 생각해요. 일기엔 항상 그 질문이 있어요. 왜 그리는지, 무엇을 그릴 것인지.

최 : 제 개인적인 얘기인데, 힐스 초기에 저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내가 너무 낯선 거예요.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 게 안 받아들여지고, 나온 그림도 별로인데, 계속 그려야 할까? 왠지 ‘그림 그리는 나’가 이제까지의 내 자아를 장악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야.’ 하는 게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그림도 그릴 수 있는, 혹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니 좀 해소가 됐어요.

이 : 사실 나도,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는 아빠이고 한 여인의 남편입니다.

최 : (제가) 뭐 하나를 전적으로 매진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 맞아요. 젊을 땐 그렇지요. 그러나 인생을 지탱하는 기둥은 하나가 아닙니다. 적어도 서너 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게 현실의 삶입니다.

김 : 자기 삶의 가치를 아는 게 중요하겠네요. 작업이나 삶이 불안할 때 우리는 죄책감을 느끼잖아요.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 예, 그래서 좀 여유 있게 호흡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독서를 많이 해야 되는 것처럼 배웠는데, 실제로 세상에 나가서 일하다보면 그 때 읽은 책 같은 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건지 의심스러운 순간들이 있죠. 그러나 실제로는, 책에서 말한 게 하나도 틀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책은 삼십대에도 읽어야 하고, 사십대에도 읽어야 하고, 오십대에도 읽어야 하고, 육십대에도 읽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속임수를 씁니다. 책 따위는 읽을 시간 없이 무지 바쁘게 살아야 되는 것처럼. 차를 사고 여행을 떠나라고 부추기지요. 현대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우리가 바보가 되기를 원해요. TV에서 이끄는 대로 물건을 소비해 주는 수많은 바보 중 하나가 되길 원하지요. 그들은 내가 한 사람의 독립된, 맑은 정신의 인격체가 되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최 : 지금까지 선생님 하고 싶은 말씀이 좀 나오셨는지요?

이 :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지금처럼 이렇게 살아도 될까, 이렇게 살아도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이 과연 사람들에게 존중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어요. 일러스트레이터의 재능은 마치 소모품처럼, 기업의 이익을 위해 소비되고 맙니다. 이 아름다운 장르가 의미 있는 정의 한 줄 얻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진 않을까 하는 그런 두려움이 제겐 있습니다. 과연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있어서 ‘정신’이란 무엇인가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마음’이 있던가요? 나는 우리의 정신이 우리들의 그림에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생을 살고 나서 기쁨이 있지요. ‘내 마음을 그렸고, 내 생각을 그렸다. 나는 살면서 그것을 사람들하고 나누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힐스에서 배출되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자기 마음에 담긴 것을 그리고, 자기가 소망하는 것을 그리고,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씩씩하게 말하는 작가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작업이 대중하고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보다 많이 갖게 되길 바랍니다. 한 인격체가, 그림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을 바로 세우기도 하는 그런 날이 오길 소망합니다.

최 :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조형의 세심함, 표현의 섬세함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나의 스타일이 정립될 때 그것이 곧 매너리즘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이 : 그림책 중에 좋은 책이라고 얘기되는 책이나,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책들이 반드시 조형적으로 탁월한 것은 아닙니다. 그림이 소박해도 오래 사랑받는 책이 있어요. 이것은 선을 똑바로 긋는다거나, 아름답게 그린다는 것 이전에 획득되어야 할 어떤 것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건 그림이 가진 ‘뜻’입니다. 그림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작가가 그림을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지요. 찬휘의 질문으로 돌아오면, 매너리즘은 조심할 일이긴 하지만, 손의 매너리즘을 걱정하기보다는 정신의 매너리즘을 걱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매일 판에 박은 사고를 한다거나, 반성적 태도가 결여되어 있으면 그것이 정신적 매너리즘이지요. 기술적 매너리즘은 그에 비하면 별것 아닐 수도 있어요. 왜냐면 작가의 뜻이 계속해서 새롭고, 샘솟듯 끊임없이 삶을 돌이켜보게 한다면, 그는 연필 하나로도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가 선을 어떤 식으로 긋는가 따위는 문제가 안 됩니다. 힐스가 미술 학교고, 우리 학교에 기술적으로 부족한 친구들이 많아서 조형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는 거지, 기술을 잘 익히는 것이 본연의 졸업은 아닙니다. 탁월한 표현 능력을 가졌어도 정신이 빈곤하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입니다.

최 : 저는, 작가가 자기 세계를 구축하면 그 안에서 매너리즘이 나오는 것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 말씀처럼 ‘뜻’이라고 하는 것이 생명이 있고, 계속 샘솟을 수 있는 무언가라면, 그 뜻을 밑감 삼아 작가의 개성도 계속 확장되어 가고 새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 그렇지요. 조형적 스타일은 대부분 생각을 따라갑니다. 작가가 언제나 같은 비유를 내놓고 있다면 그의 생각도 제자리에 멈추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 : 늘 뜻을 되새겨보고, 또 그 뜻으로 잘 가고 있는가에 대한 점검을 하는 것이 마치 구도자의 모습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이 : 그래요.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사유하는 것, 지금 현 시대에 살아 있는 말을 하는 것, 둘 다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명제는 작가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책임입니다.